제목 제31회 한터 백일장 작문 심사평 & 수상작
작성자 센터지기 등록일 2024.02.02
제31회 한터 백일장 작문 심사평 & 수상작


◼︎ 심사평

이번 백일장 작문 제시어는 1300만명의 흥행 성적을 낸 영화 제목 ‘서울의 봄’입니다.

봄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때문인지 기후위기가 심각해진 미래의 모습을 그리는 글들이 많았습니다. 미래 시점의 작문이 성공하려면 스토리 구성 과정에서 플롯을 정교하게 짜야 합니다. 캐릭터의 현재 상태와 행동 양식, 시간 배경과 공간 배경, 벌어지는 사건의 성격과 전개과정 등이 그럴 듯해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는 스토리의 조건이기도 한데, 이 아이디어로 쓴 글 중에 개연성과 핍진성이 높은 글을 찾지 못했습니다.

‘서울의 봄’이 민주주의를 상징한다는 점 때문에 민주주의를 주제나 소재로 활용한 글들도 있었습니다. 서울이라는 공간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모티브 삼아 쓴 글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본격적으로 분석하거나 평가한 글들도 있었습니다.

최우수작은 인공지능(AI)이 고도로 발전한 미래 시점에서 한 작가가 과거의 러다이트 운동과 같은 거사를 준비하는 이야기인데 완성도가 높은 글입니다. 12·12 쿠데타 과정에서 선(善)과의 동행을 거부하고 악(惡)에 굴복한 이들 때문에 서울의 봄이 단숨에 어그러진 역사를 떠올려 그런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상상을 했는데, 아이디어가 흥미롭고,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하는 요소도 강합니다.

우수작 1은 최우수작으로 뽑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잘 쓴 작문입니다. 서울의 봄을 꿈꾸었지만, 끝내 서울의 봄을 꿈꾸지 않기로 한 주인공이 자신의 처지를 식물에 빗대어 전개한 글입니다. 식물에 빗댄 아이디어가 적절하고 자연스러운 점이 장점입니다. 우수작 2 역시 아이디어가 눈길을 끄는 글인데, 개연성과 핍진성이 조금 부족했습니다. 우수작 3은 자유민주주의를 식물에 빗대어 식물 사전 형식으로 쓴 글인데, 글 형식이 독특한 점이 눈길을 끕니다.

작문 백일장에 응모해준 모든 준비생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는 5월 제32회 백일장에서 또 만나면 좋겠습니다.


◼︎ 최우수작 (김진영)

“엄마, 국어 숙제 도와주세요.” 요즘 고등학생들은 다들 AI의 도움을 받아 숙제한다던데, 나의 단호한 반대로 딸은 이를 사용하지 않는다. 가끔 늦은 밤 그의 방문에 몰래 귀를 가져다 대면 누군가의 희미한 말소리가 들려오긴 하지만 말이다. 딸이 가져온 교과서에는 역시 이름 모르는 작가의 글들만 가득하다. 참 이상한 일이다. 손에서 책을 거의 놓지 않는, 소문난 책벌레였던 학창 시절의 나였다. 하필 대학도 국문학 전공을 하는 바람에 지겨우리만큼 활자와 함께했다. 그런 내게 영 초면의 작가들이라니. 애초에 ‘인간으로 된’ 작가는 없었다는 듯, 그 흔적을 무참히 지워버린 채 AI가 쓴 허울 좋은 글들만 가득 실은 교과서다.

그렇게 푸르던 스물일곱에 시작해, 채 십 년도 채우지 못하고는 나의 업을 떠나보냈다. 책장에 꽂힌 저 수백 권의 책들만이 말한다. 내가 지나온 그 시간은 분명 살아있었다고. 하지만 그마저도 내 서가에서만 빛을 발할 뿐, 박물관 지하 창고에 먼지가 잔뜩 쌓인 고대 유적-예컨대 서민들의 놋그릇-정도로 취급된다. 그렇게 역사는, 그리고 세상은 나를 저버렸지만, 그들이 저버린 것이 비단 나뿐만은 아니다.

그 등장부터 번역가를 위협했던 AI다. ‘딱딱한 컴퓨터’는 결코 ‘인간의 유연함’을 따라올 수 없을 거라던 행간의 소문들은 그대로 묻혔다. AI는 모든 문맥, 행간, 맥락을 이리저리 널피뛰며 자유자재로 그 문자들을 조합했다. 시인이나 싱어송라이터도 마찬가지다. 사전에 등재되지 않았지만-그래서 AI는 학습할 수 없지만-, 인간이라면 어렴풋하게 그 뜻을 느낄 수 있는 단어들이 여럿 있다. 종종 회자되는 한 가수의 단어들, ‘바람을 세로질러’, ‘꽃갈피’, ‘사랑히’ 정도가 떠오른다. 이런 언어의 자유도마저 로봇은 빼앗아버렸다. 예컨대, 앞에 슬쩍 넣어본 ‘널피뛰다’도 끙끙거리며 만든 단어건만, AI라면 단 0.001초 만에 기꺼이 생각해 낼 만한 수준인 것처럼.

물론 이 외에도 무수한 직업인들이 순식간에 길을 잃고 방랑했지만, ‘예술인’으로 묶인 우리들의 연대는 다른 여타 집단들에 비해 더욱 들끓었다. 나름의 고유한 지조를 지키고 있었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자존심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거사를 준비해 나갔다. 1811년 러다이트 운동의 회귀마냥 단단하고, 뜨겁고, 치열하게. 그렇게 순탄히 진행되는 듯하던 거사 준비에 큰 변수 하나가 생겼다.

명작으로 손꼽히는 고전 영화 하나가 기억난다. 12·12 사태를 다뤘던. ‘선(善)’과의 동행을 거부하고 ‘악(惡)’에게의 굴복을 택했던 누구들로 인해, 올 듯했던 따듯한 봄날들이 단숨에 어그러진.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어쩌면 우리와 가장 닮아 있는 그것이다. 특정 직업군이 돌연 참여를 거부했다. 자기네는 아직 그만큼의 위기를 실감하지 못한단다. ‘폭력적’ 타이틀을 얻어서 좋을 것 하나 없다며, 괜한 위험 부담을 안고 싶지 않다는 그들이다. 이들의 부재는 분명 남은 이들에게 있어서 크나큰 낭패였다.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분명 필요한 이름들, 그러니까 유명인이 가장 많은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수 없었다. 우리에겐 그들을 붙잡을 만한 힘이 없었고, 그들에겐 우리가 미처 건네지 못한 달콤한 구슬림이 닿았다.

파주 출판단지. 이곳에 작은 주택 하나를 지어, 평생 책들 옆에서 숨 쉬고 살아가겠다는 당찬 꿈을 가지고 있었더랬다. 하지만, 세상은 이곳에 풍기던 모든 책 냄새를 지워버렸다. 아무리 코를 씰룩거려봐도, 일말의 종이 냄새조차 나지 않는다. 우리의 투쟁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파주에도 봄이 오나, 아무래도 모르겠다. 부디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길. 이 글을 읽는 누구에게나 부탁한다.


◼︎ 우수작1 (김희지)

서울의 봄을 꿈꾸었다.

이곳, 서울에서 만개하겠다는 꿈. 나는 서울의 봄을 꿈꾸었다. 원룸 한 칸 겨우 내어준 서울이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학창 시절 내내 꿈꾸던 서울 입성. 졸업하고 취직하면 이사도 갈 수 있겠지. 꿈이 씨앗이라면 그날의 나는 막 발아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고시원이었다. 분명 원룸이랬는데 뒤늦게 등기를 떼어보니 ‘고시원’이었다. 고시원을 원룸으로 개조해 세를 놓은 것이다. 어쩐지 창문이 너무 작더라. 주인에게 항의해 봤지만, 냉담한 반응이 돌아왔다. “그래서 지금 이만한 방 구할 수 있겠어?” 그도 그랬다. 이미 개강한 뒤였다. 근처의 괜찮은 매물은 다 빠졌다. 부동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빌라마다 창문이 빼곡했다. 발아래엔 보도블록이 빼곡했다. 보도블록 틈 사이 모래들. 어쩌면 나는 스스로를 씨앗이라 믿는 모래가 아닐까. 허용된 작은 틈 사이 겨우 낀 모래.

그래, 어쩐지 창문이 너무 작더라. 방 안에서 밖을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바깥에는 봄이 왔다는데 방 안은 변화 없이 칙칙했다. 충동적으로 양재 꽃시장을 찾았다. 시장 한 편에 쪼그리고 식물들을 구경했다. 각자의 화분에 뿌리내린 식물들. 나도 뿌리 내리는 중이라고, 그래서 시련을 겪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등 뒤로 대화가 들렸다. “정말 햇빛 없이도 자라요?” “그럼요, 안 죽는다니까요.” 가만, 햇빛 없이도 자란다고? 두 사람 사이에 놓인 것은 호야였다. 잘 키우면 봄에 꽃도 피운다는 식물. “저 이거 주세요.”

과연 호야는 자랐다. 식물은 빛, 물, 바람이 중요하다던데 내가 줄 수 있는 건 물뿐이었다. 그런데도 새순을 올렸다. 하루가 다르게 길어졌다. 기뻤다. 이곳에서 식물도 자랄 수 있다니. 나도 너처럼 자랄 수 있을 거야. 꽃도 피울 수 있겠지? 그러나 다음 해, 그다음 해, 그다음의 다음 해까지 기다려도 꽃은 피지 않았다. 그즈음 ‘웃자람’을 배웠다. 식물이 키만 크는 것은 웃자라는 것. 잘 자라지 못한다는 신호였다. 햇빛을 충분히 받은 식물은 짧고 튼실하게 자란다. 내 호야는 길고 가늘었다. 웃자람은 ‘발악’의 상징이랬다. 조금의 빛이라도 더 받아보려는 발악. 그제야 꽃가게 사장이 “안 죽는다”고 대답한 것이 떠올랐다.

식물 개수가 이백이 넘는다는 유튜버, 그의 식물들은 달랐다. 그의 집은 서울의 고층 아파트였다. 널찍한 거실과 길쭉한 베란다에서 식물들은 햇빛에 달달 구워졌다. 그는 그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했다. “지난겨울 호야 에스키모를 사놓고 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짜잔! 이렇게 꽃을 피웠답니다!” 그는 매해 봄 집안의 꽃소식으로만 40분짜리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서울에 뿌리내린 그. 그는 봄꽃도 넉넉히 꿈꾸고 있었다.

나는 매달 월세에 발악해야 했다. 이 고시원에서 꼬박꼬박 생존하는 일마저 벅찼다. 식물은 뿌리내린 곳이 마음에 들 때 꽃을 피운단다. 내 호야는 꽃대를 올리지도 않았다. 사시사철 똑같은 모습으로 그저 생존 중이었다. 나는 뿌리내리는 일도 실패하고 있었다. 내가 서울에서 틈을 찾아 겨우 뿌리를 내린대도, 이 방의 호야가 될 터였다. 꽃의 꿈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감히 꾸었던 꿈. 이제부터 나는 서울의 봄을 꿈꾸지 않기로 했다.


◼︎ 우수작2 (이세영)

“총통 각하께서 태어나신지 84년이 된 어느 날, 죄인의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검사가 내 앞으로 다가와 나를 무섭게 쳐다보았다.

“죄인, 어째서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지 아십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죄인은 아주 유명한 글 공작소에 다니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신어(新語) 사전에 없는 단어를 사용해 글을 썼습니다.”

“검사, 좀 더 자세히 말해 보세요.”

“죄인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할 때 대… 아니, 총통이었던 박정희 각하께서 갑작스럽게 서거하신 후 ‘서울의 봄’이 왔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서울의 봄. 그 단어를 말할 때 검사는 치를 떨었다.

“봄이라니요, 재판장님. ‘봄’은 30년 전 신어 사전을 만들 때 사라진 단어입니다. 그때 죄인은 고작 걸음마도 떼지 않은 아주 어린 사람이었습니다. 사용한 적도 없는 단어를 사용한 의도가 몹시, 몹시 나쁩니다.”

검사는 ‘몹시’라는 단어를 ‘몹시’ 강조했다. 판사가 이해되지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

“죄인, 어째서 그런 몹시 나쁜 단어를 쓴 겁니까? 검사 말대로 ‘봄’이라는 단어는 30년 전 신어 사전을 만들 때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대신 ‘기온이 적당히 높은 계절’이라는 단어를 쓰기로 결정했지요. 서울에 찾아온 기온이 적당히 높은 계절. 이 얼마나 쉽고 좋은 말인가요?”

나는 주눅이 들어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판사가 무서운 얼굴로 윽박질렀다.

“죄인, 대답하세요!”

“위대하신 총통 각하만큼이나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그저, 그때는 그 시기를 그렇게 불렀고….”

“죄인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요? 그 시기를 서울의… 그러니까 적당히 기온이 높은 계절로 일컬었던 것을 어떻게 알았느냔 말입니다. 그때와 관련된 사실은 이제 아무나 알 수 없는 것이 되었을 텐데요.”

“그게… 아버지가 제게 전달해주었습니다.”

“아버지라니요!”

판사가 다시 한 번 고함을 쳤다.

“우리에게 아버지란 총통 각하뿐입니다, 죄인.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죄, 죄송합니다. 저를 낳아준 사람이, 어릴 때 배워서 제게 전달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죄인은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았군요.”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죄인에게 뇌를 뜯어고칠 수 있는 관용을 베풀겠습니다. 앞으로 죄인은 매일 하루 3시간 씩 총통 각하의 위대함을 배울 수 있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나는 안도했다. 그러나 판사의 표정이 곧 엄중해졌다.

“대신 죄인이 그런 축복을 누릴만한 자격이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 ‘그 시기’에 대해 아는 대로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아, 네. 당시 대, 총통이었던 박정희 각하가 암살당한 뒤 전두환 각하께서 즉위하기 전,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했던 시기를…….”

그 순간 나는 엄청난 말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민주주의, 희망. 이런 말들은 이제 죽은 단어가 되었다. 나는 외운 것을 앵무새처럼 생각 없이 내뱉었다고 변명하려 했으나 이미 재판장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저 자의 뇌는 뜯어고치기 어려울 것 같군요. 더는 총통 각하가 마시는 공기를 더럽히지 않도록 해야겠어요.”

그러자 입구에 서있던 자들이 다가와 나를 어딘가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 우수작3 (이송윤)

알아두면 쓸데 있는 식물 사전

학명: libértas Democratia (자유 민주주의)

분포: 외래종이었던 이 식물은 헌법1조 1항의 보호를 받으며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우리나라 영토에 정착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80년 ‘봄, 서울’에서 이 종은 당시 생태계 위협종으로 여겨져 제거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실제로 80년대 당시에는 거의 멸종 직전까지 이르렀고 특히 전라도와 광주 지역에서는 잎사귀 하나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현재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 종의 위협성은 당시 식물학 위원회의 높은 자리를 둘러싼 학계 다툼에서 비롯된 거짓 정보였다. 80년대의 제거 작전에도 불구하고 이 종은 40년간의 변이시기를 거치며 오히려 다른 형태의 번식방법을 채택하게 되었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전역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된 상태이다.

생육 환경: 역설적이게도 이 종은 생존환경이 척박할수록 성장의지를 더욱 드러낸다. 그렇기에 의도적으로 종자를 밟거나 영양분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 스트레스 호르몬 지수가 급격하게 상승하는데 이때 평소보다 더욱 빠른 발아 현상을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종이 보편적으로 자리잡은 지금, 이 식물은 80년대와 같은 폭발적인 성장속도나 의지를 보이고 있진 않는다. 자발적으로 다음 번식을 선택하지 않는 무관심병에 걸린 식물들도 다수 발견되었다. 또한 특정 생육환경에만 정착하며 다른 환경에 서식 중인 식물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편향적 성향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번식방법: 특이하게 종자와 포자 이중 형태로 번식이 가능하다. 우선, 포자의 형태로 전국 각지에 퍼진다. 한 번 포자가 토지에 상륙하면 쉽게 떼어 내기가 어렵다. (80년대 제거작전이 결국 실패로 끝난 이유이기도 하다) 토지에 상륙한 이후로는 종자로 형태를 변이하며 곧 땅속에 깊게 뿌리를 박는다. 이 상태에 돌입하면 외부의 어떠한 시련이나 방해물은 이 식물을 더욱 성장시키는 촉진제로 역할하기도 한다. (*생육환경 참조)

특징: 초창기에 비해 성장과 번식 속도가 더디던 이 식물은 최근 전국적으로 1300만 개체수 이상이 80년대와 동일한 스트레스 지수의 상승세를 보이며 어느때 보다 더욱 풍성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또한 이 식물은 4년, 또는 5년을 주기로 대규모 격변을 일으키는 가운데, 4년 주기의 격변 현상은 곧 다가올 4월로 예상되고 있다. 또 다른 ‘전국의 봄’에 어떤 격변 현상이 일어날지 학계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