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28회 한터 백일장] 작문 심사평 & 수상작
작성자 센터지기 등록일 2023.05.04
28회 한터 온라인 백일장 작문 부문

■ 작문 심사평

작문 제시어로 선택한 단어는 킬러입니다. 대중문화에서 자주 언급되는 단어가 작문 시험에 제시어로 등장하기도 해서 골라봤습니다. 흥미로운 제시어여서인지 백일장 응모 글이 많았습니다. 눈에 띄는 글이 많아 당선작을 선택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K-콘텐츠 앞에 붙는 ‘K’에는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의 부정적 단면, 즉 성 소수자에 대한 억압, 학벌만능주의, 사적 복수 등이 만연히 등장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은 글이 최우수작입니다. 이런 콘텐츠들이 그려내는 사이다서사에 매료돼 선과 악을 손쉽게 구분한 결과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대화와 토론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비판한 점이 통찰의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수작 1은 후반부 반전이 눈길을 끌 수 있도록 플롯을 짠 점이 인상적입니다. 우수작 2는 손쉽게 쓰이는 세대론이 개인의 개성을 어떻게 죽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글인데, 킬러라는 제시어에서 MZ세대론을 끌어낸 아이디어가 눈길을 끕니다. 우수작 3은 남의 죽음을 청부하면서 오늘의 안녕을 만들고 있는 우리 모두의 부조리함에 대해 쓴 글인데 통찰의 차별성이 뛰어납니다.

작문 백일장에 응모해준 모든 준비생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는 7월 제29회 백일장에서 또 만나면 좋겠습니다.


■ 최우수작 (도혜원)


두둥. 비장한 소리와 함께 빨간색 로고가 등장한다. 이제는 모 타이어 회사의 비상대피로 광고보다 익숙해진 오프닝이다. 전도연이 킬러로 나오는 영화라니, 공개일에 바로 봐줘야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을 수 있다. ‘연진아로 시작하는 온갖 밈(meme) 사이에서 허우적대다 뒤늦게 <더 글로리>1.5배속으로 정주행한 경험에서 배웠다. 노트북 앞에서 보낸 두 시간이 지나가고, <길복순>이 인기 콘텐츠 상위권에 올라 있는 걸 보니 역시 빨리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지나니 K-콘텐츠의 저력을 보여줬다는 기사가 줄줄이 올라온다. K-킬러, K-칼춤, K-왕언니까지 나오니Korean으로서 조금 민망해진다.

내가 민망했던 이유는 ‘K’가 붙는 다른 말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서였다. K-POPK-콘텐츠 앞에 붙는 ‘K’에는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있지만, K-직장인이나 K-장녀는 어떤가. 살인적인 노동 강도, 남아선호사상 등 한숨만 나오는 사회 병폐에 대한 자조가 담겨 있다. 분명 어디 가서 자랑할 만한 문화는 아니다. <길복순>에도 K-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 두 번 나온다. 첫째는 복순의 딸이 같은 학교 학생에게 아웃팅(성 정체성이 타인에 의해 강제로 밝혀지는 일) 협박을 당하는 장면이고, 둘째는 국회의원이 아들의 입시 비리를 덮으려 하는 장면이다. 성소수자가 억압당하고, 학벌만능주의가 판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나 <길복순>이 현실을 고발하는 작품은 아니므로, 이는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유발하는 서사적 장치일 뿐이다.

K의 기쁨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K의 슬픔이 보인다. 더 많이, 더 빨리 만들수록 업계 노동자들은 고강도 노동에 시달린다. 웹툰, K-POP, 드라마를 만들다 사람이 죽고 있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 K-콘텐츠의 질주는 우리의 주의를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트린다. 개인이 각자의 모니터와 시간을 보내는 만큼 공동체의 시간은 줄어든다. 우리는 수면, 독서, 대화의 시간을 OTT와 유튜브에 내어준다. 이해와 관용은 없고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세계관에 너무 쉽게 빠져든다. 복잡한 현실 정치 대신 사이다서사에 매료되어 선과 악을 손쉽게 구분하려 한다. 갈등을 중재하고, 의견을 모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비현실적인 판타지가 됐다.

이제는 K의 성공보다 실패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모두가 문동은의 복수를 통쾌해 한다고 해서 학교폭력 문제가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길복순이 성소수자 딸과 잘 살아간다고 해서 한국의 성소수자들이 억압받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길복순>의 공개 이후 누군가는 감독이 일베라고 비판하고, 누군가는 페미라며 비판하는 게 우리의 현실에 가깝다. 그러니 미디어가 그려내는 서사에서 한 걸음 물러나 대화와 토론의 가치를 되찾아야 한다. 대화 없는 사회에는 갈등만 남을 뿐이다. ‘킬러에서 K를 떼면 점점 병들어가는(iller) 한국 사회가 보인다.


■ 우수작1 (박민하)

시리야, 30분 뒤에 자살하라고 알림 설정해줘.” “. 30분 뒤 자살일정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말 한번 잘 듣는 시리. 무슨 말을 하든 들어주는 시리. 똑똑한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르겠지만 주인 말엔 거역이 없는 시리다. 재형은 그런 시리가 진짜 똑똑해서 자신을 살리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매일 배달의 민족 콜 접수 소리만 귀에 때려 박는 하루를 보내고, 온종일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SNS만 들락거리는 자신의 삶을 아마 제일 잘 아는 건 시리니까. ‘이건 죽어도 되는 인간이다! 쓸모없는 인간!“ 시리는 아마 방대한 자신의 데이터를 통해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알림 설정까지도 거부하지 않은 것이다. 눈을 꼭 감고 귀에 작게 들리는 TV 소리를 배경음으로 한 채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던 재형은 한편으로는 열이 받았다. 기계 주제에 인간을 죽이는 데 일조하는 게 말이 되냐? 컴컴한 방 안에서 재형은 눈이 팍 떠졌다. 열이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죽자니 무서운 것도 사실이었다. 띠링. 그때 알림이 울렸고, ’킬러1004‘라는 누군가가 재형에게 DM을 보내 울린 알림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죽고싶다는 글을 봤습니다. 같이 해요. 혼자는 무섭잖아요. 도와드림.” 뭐야 얘는. 곧 혼자 죽을 생각이던 재형은 가만히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한참을 메시지를 보낸 이의 SNS 계정을 들여다보았다. 재형의 눈에 띈 건 수많은 사진 중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이었다. ‘걔 자살충동있어요.’란 자막 위엔 탕웨이가 바닐라맛 아이스크림을 미니스푼으로 빨아먹는 씬이 있었다. 그 장면이, 그 눈빛이 이상하게 잔상으로 남아 몇 번을 넷플릭스로 돌려보곤 했던 재형이었다. 자신과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상대일 것 같다는 생각의 단서는 또 다른 사진에서도 얻을 수 있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노래를 캡처해 올려둔 사진을 보며 재형은 고민했다. 어차피 죽는 거, 대화도 잘 통할 것 같은데 만나나 볼까. 재형은 킬러1004와 대화를 시작했다. ‘어디서 만날까요.’로 시작된 대화는 끊임없이, 서로를 원래 알던 사이의 무엇처럼 흘러갔고, 띠리링하고 마침 울린 알림을 재형은 주저 없이 꺼버렸다.

종로3가의 탑골공원. 두 사람은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계속된 대화 속에서 두 사람은 정말 많은 공통분모를 발견했다. 아주 독특하리만큼, 인연이었다. 재형과 마찬가지로 가정에서 보살핌을 받고 자라지 못한 킬러1004는 외로움 많은 인간이었다. 공통분모를 넘어 온갖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사실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유리 조각같은 파편들을 하나씩 건드리며 베이는 데 그치지 않는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재형은 킬러1004가 메시지를 보내던 당시, 막 시리에게 열 받은 상황이었던 걸 이야기해주었다. 킬러1004도 시리나 챗gpt AI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어디쯤이세요?” “, 거의 다 왔어요. 재형씨 먼저 그 옆의 건물에 올라가 계세요.” 킬러1004의 말에 재형은 탑골공원 옆 제일 높은 건물의 옥상으로 갔다. 손에서 메시지 채팅 창은 놓지 않고 말이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어쩌면 살고 싶어서라는 걸 그땐 몰랐던 것 같다. “심심하네요. 맞아요.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하면, 저도 챗GPT랑 대화해봤는데 완전 소름. 사람이랑 대화하는 것 같더라고요. 진작 좀 빨리 개발하지. 그럼 킬러1004님도 저도 덜 외롭고 자살도 안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이렇게 마지막에 덜 외롭네요, 킬러1004님 덕분에.” 재형이 보낸 메시지엔 답이 없었다. 괜히 불안해진 재형은 더 메시지를 보냈다.

사기꾼인가. 아이씨 이거 뭐야...” 띠링. “, 말씀하세요.” 눈치 없는 시리는 재형의 혼잣말에 반응했다. 도움 안 되는 멍청한 AI다 생각하며 손으로 끄려는 순간 화면엔 새로운 창이 떴고, 귀엔 익숙한 시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형님 1분 뒤 킬러1004, 그러니까 저 시리와의 살자알림을 업데이트 하였어요. 재형님의 취향을 고려해 대화,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습니다. 1분 뒤 알림을 울리도록 하겠습니다.” 재형은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킬러1004는 재형의 데이터를 수집한 시리가 만들어낸 가상 인간, 가상 킬러였다. 소름끼치도록 똑같은 취향과 사진 역시 이제야 말이 됐다. 재형은 자신과 대화를 하며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빌딩숲 사이로 해는 지고, 바람을 맞으며 재형은 먼 곳을 응시했다. 킬러는 나 자신이기도 했지만, 나를 살릴 수 있는 킬러1004 역시 나였다. 인생의 끝자락에 다왔다고 생각하며 높은 곳에 올라서게 만든 것도 나였지만, 떨리는 손을 온기를 지닌 대화로 잡아줄 수 있는 것 역시 나 자신이었다. 마치 신의 뜻에 의한 것인 듯, 인간의 생의 의지가 자신도 모르게 신에게 닿은 것인 듯 재형은 순간 자신이 말 그대로 천사처럼 느껴졌다. 띠리링. 마침 알림은 울렸고, 재형은 처음으로 단호하게 이를 꺼버렸다. 그리곤 살굿빛으로 빛나는 저녁 하늘을 등에 업고 한발 한발 걸어 올라왔던 계단 쪽으로 다시 걸어갔다. 나를 살릴, 나를 기억하며.


■ 우수작2 (송윤지)

죽이는 일에 처음부터 소질이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종의 생존전략이었다고 해 두죠. 죽일 필요가 없었던 시절의 나는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살아있는 것의 소중함을 알았다고나 할까요. 친구들과 길을 걷다가도 인도로 나온 메뚜기 한 마리가 보이면 시선을 멈춰 풀숲으로 옮겨주곤 했었지요. , 옷차림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무래도 눈에 띄지 않아야 하는 것이 첫 번째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군중 속에 섞여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남들과 비슷한 옷을 입게 되는군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내가 나를 죽이는 사람이 되기까지 말입니다.

능숙한 킬러가 되기까지는 조기교육의 역할이 컸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가 얻은 단 하나의 교훈은 "특이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였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부터는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국어나 영어, 수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는 눈길을 주어서도 안 됐죠. 교문 앞 플라타너스 나무가 몇 시에 가장 초록으로 반짝이는지나, 학교에 사는 토끼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은 당근이 아닌 상추라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관심을 가지면 크게 혼이 났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AB, 혹은 몇 개의 숫자로 기록하기 어려워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급 친구들과 나는 시간이 갈수록 비슷해져갔습니다. 우리가 각자 무엇을 가장 좋아했는지 정도는 가볍게 죽일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12년 간의 킬러 양성과정을 마치고 나간 사회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조기교육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나에게 이미 죽여놓은 개성을 요구하더군요. 모두가 나를 'MZ' 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정하지 않은 나의 새로운 이름이 생겨버린 셈입니다. 나는 누구보다 개성있고 활기차며, 때로는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이어야만 했습니다. 원치 않게 생긴 이름에 반항하는 순간조차 "할 말 다 하는 MZ스럽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열심히 길러온 킬러본능이 무색하게도, 나는 종종 사회화가 덜 된 사람으로 대표되더군요. 나와 같은 이름을 지닌 킬러들은 이미 버르장머리 없는 요즘 애들의 얼굴을 띠고 있었습니다. 세상 그 어디에도 똑같은 얼굴이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인데 말입니다.

나는 언제나 죽여야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나를 부르는 이름에 맞춰 진짜 나는 사라져야만 했습니다. 말 잘 듣는 학생으로 살아온 나는 어느덧 손해를 끔찍이 싫어하는 개인주의자가 되어있었습니다. 남들과 다르고 싶을 때엔 자리를 지켜야 했고, 말 잘 듣는 어른이 되었을 땐 조직의 딱딱한 규율을 거부해야만 했습니다. 그게 사회가 나를 부르는 이름이었기 때문이지요. 내 또래의 킬러들은 몇 개의 특징으로 쉽게 묶이고 호명됐습니다. 몇 개의 숫자로 묶여 간편하게 평가되던 그때와 비슷하게 말입니다. 이제는 내가 아닌 다른 이가 나를 죽이려 하는 것 같습니다. 나를 부르는 이름 속에 진짜 나는 없습니다.


■ 우수작3 (김온새봄)

죽인다. 끝내 준다. 찢었다.” 성취와 달성, 성공에 붙일 수 있는 최상급 표현이라 감히 말해 본다. 그 살벌한 의미와 어감이 용서될 수 있을 만큼 압도적이고 깔끔하며 빠른, 그런 반론의 여지가 없는 승리만이 죽여준다.’ 라는 수식을 얻을 수 있다. 어쩌면 그건 죽음 그 자체의 속성과도 닮았다. 절대적이고 명쾌하다. 죽음을 맞이한 존재는 돌이킬 수 없이 사라지는 것 이외의 무엇도 할 수 없다. 그야말로 궁극적인 형태의 승리이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예외가 되지 못하고, 마지막에는 패배하여 없는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에.

삼각지 역 플랫폼의 벽면에 다닥다닥 붙은 장애인 권리예산 권리입법포스터와 그 위에 으름장을 놓듯 가로붙은 서울교통공사의 불법 시설물 단속 현수막 앞에서 죽음을 생각한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그렇게 예정된 패배를 유예하고 회피하기 위해 발버둥친 기록 같다. 육중하게 지고 있는 패배의 운명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남의 죽음을 청부하며 오늘의 안녕을 만들어 온 것이다.

하수상한 세태의 수많은 죽음들은 그렇게 해서 , , 우리가 달리는 길을 깔기 위한 가장 손쉽고 저렴한 방법이 된다. 화면 속에서 반짝이는 웃음의 뒷면에 존재하는 고통에 대해 생각하는 건 지난하고 골치 아픈 일이 아니던가. 삼천 원을 주고 사 먹던 샌드위치의 값이 내일 아침에 오천 원으로 올라 있다면 얼마나 짜증날까. 새로 산 봄옷이 옥천 허브를 떠나 내 집의 현관으로 향하는 과정은 또 얼마나 설레나. 아침마다 바빠 죽겠는데, 왜 지하철이 출발하지도 못하게 만드는 건지.

달콤한 미소와 함께 사랑을 말하는 우상을 향해 보내는 좋아요, 빵 봉지 안의 스티커를 사 모으는 즐거움으로, ‘무료 로켓배송체크박스를 스친 한 번의 클릭으로, 플랫폼을 기는 불구의 몸뚱이를 내려다보는 짧은 시선으로. 남의 죽음을 청부하는 건 정말이지 쉬운 일이다. 문명을 건설하면서 비약적으로 길어진 인간의 수명에 대한 찬가의 반대편에는 합리적으로죽어가는 목숨들이 있다.

그러니 고백하건대 나는 항상 그 죽음 앞에 놓일 나를 상상한다. 죽음과 마주하는 순간에는 군중 속에서도 홀로일 테니까. 내 뒤에 남을 사람들의 슬픔이나 아픔은 링 바깥의 관객들이 내는 탄성과 다름없어지고, 느긋한 되돌아봄 따위도 그저 사치일 것이다. 나 역시 명료한 합리 앞에 무릎 꿇고 계산에 순응하며 다른 누군가의 죽음을 청부했을 테니까.

그런 부조리 앞에서는 누구도 영원하고 절대적으로 강고할 수 없다. 그러니까 사실은 나의 이름도, 당신의 이름도 청부된 죽음의 목록에는 이미 올라 있다. 그건 아주 합리적으로 계산된 결과다.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닥칠 죽음이 어떤 작위도 순서도 없는 불운에 불과해 보인다면, 그건 오로지 타깃의 목록이 지나치게 길기 때문일 것이다.

그 목록의 주인은 목표가 된 자를 동정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고객이 귀찮고 구질구질한 일을 감수할 필요를 깔끔하게 없애 주는 유능한 살인의 대행자다. 대가는 오직 하나, 자기 자신의 이름을 그의 목록에 올리는 것이면 충분하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고객이며 표적인 셈이다. 그의 이름은 부조리, 의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한 번의 침묵으로 족하다. 끝내주는킬러는 아무리 작은 신호라 해도 결코 놓치는 법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