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26회 한터 온라인 백일장] 작문 부문 우수작2_홍지희
작성자 센터지기 등록일 2022.11.21
제26회 한터 온라인 백일장 <작문 부문> 우수작2
홍지희

[혁혁(赫赫)한 자유와 지(紙)우산]

오랜만에 가는 서울이지만 역시나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었다. 밤이 깊어가는데도 조명 때문에 검은색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단체 투어는 어딘가 조잡스러웠다. 비행기를 타고 육지로 올라오는 길도 한몫했다. 물갈이에다 도저히 적응 안 되는 북적임에 경애는 지쳤지만, 죽상으로 시간을 버리기는 싫어 버텼다. 탁한 공기지만 이것도 서울에서나 볼 수 있는 특산품이겠거니 하고.

셋째 날 자투리 시간에는 무료라는 이유로 한 문학관에 멈췄다. 건물에 들어서자 시인의 삶을 딱딱하게 잘 정리해놓은 연표가 펼쳐져 있었다. 그의 시와 산문, 서재, 생전에 적어둔 메모가 보관되어 있었다. 전시실의 활자들은 사람들을 붙들고 시인의 문학이 남긴 찬란한 의의를 읽어내라고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경애는 ‘그래그래 알았다’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곳곳에 적힌 설명을 다정하게 읽고 지나갔다. 하지만 표정은 썩 친절하지 못했다. 전 연인을 마주친 표정, 아니 그보다도 더 복잡했다. 경애의 얼굴에 참을 수 없는 동경과 적대가 뒤섞였다. 중학교 교과서도 그가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 사랑과 자유를 외친 문인임을 안다. 그만큼 치열하게 자신과 싸우면서 사회를 비판한 문인은 드물 터다.

경애는 시인의 열정과 냉정을 사랑했다. 하지만 어째 그의 시가 해방과 자유를 말하고 있노라면 이따금 입을 앙다물고 삐딱하게 노려보게 되는 것이었다. 모두가 시인의 넓은 우주를 들여다볼 때 경애는 지(紙)우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시에서 여편네를 팰 때 썼다던 지(紙)우산, 실제로도 제 아내를 팼다던 바로 그 지(紙)우산. 경애도 모르지 않는다.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봉황의 뜻을 읽으라 다그치는 말, 시를 더욱 깊게 읽어내라는 먹물들의 요구를 말이다. 그런데도 안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지(紙)우산은 경애가 밟아온 유리 조각들을 토해냈다. 계집애가 육지에 있는 학교가 말이나 되냐며 핀잔을 들었다. 친척 집에서 모임이라도 있는 날이면 연유도 모른 채 부엌문으로만 드나들어야 했다. 제사를 올릴 때, 월경으로 비린 몸을 들이면 안 된다고 다른 방으로 숨어 들어간 사촌 언니의 민망한 얼굴이 스쳐 갔다. 당최 어디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도 없는 아버지의 ‘선’을 넘었다는 죄로 목이 졸린 친구의 푸념도 떠올랐다.

누군가는 찬란한 자유와 고고한 정신을, 다른 누군가는 부끄러움과 멸시, 죽음을 떠올렸을 지(紙)우산의 틈에 대해 생각했다. 경애는 옷 끝을 한참 만지작거렸다. 토라져 돌아서 다시는 기억해주지 않는 걸로 복수할까. 아니면 고개 몇 번 휘저어 없던 셈 치고 끌어안아 볼까. 전시실 한쪽에서는 방문객들이 문학의 저항정신을 기리고 있었다. 그가 썼던 시어 낱말 퍼즐을 엮어 시를 짓고 있었다. 분노와 존경, 답답함과 이해심, 절망과 희망을 눌러 담아 한 줄의 시구를 돌려주기로 했다. ‘시인이여, 자유를 위해 혁혁(赫赫)한 자유를 버리세요’ 저주도 찬미도 없었다. 다만 혁혁한 자유가 뱉어낸 자의 서운함만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