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26회 한터 온라인 백일장] 작문 부문 심사평 & 최우수작 (정인화)
작성자 센터지기 등록일 2022.11.21
제26회 한터 온라인 백일장 작문 부문 심사평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가장 자주 소환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자유일 겁니다. 두 음절 이상 단어가 작문 제시어가 되는 경우 그 당시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이번 백일장 작문 제시어를 자유로 골라봤습니다.

최우수작은 성 소수자 소재의 작문입니다. 쓰기 어려운 소재인데 인상적으로 쓴 점이 돋보입니다. 보통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를 소재로 작문을 쓰는 건 그렇지 않은 경우에 견줘 힘이 듭니다. 다수가 공감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미디어가 그려낸 그들의 모습을 떠올린 뒤 스테레오타입으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자연스럽지 못하고 억지스럽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최우수작은 세상이 성 소수자들을 향해 비추는 거대한 손전등을 통해 그들이 느낄 부자유를 조명합니다. 작위적이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읽히면서도, 제시어에 대해 글쓴이가 전달하려는 맥락도 뚜렷이 느낄 수 있는 글입니다.

우수작 1은 인간의 자유를 모기가 좌지우지하는 미래의 모습을 상상한 글입니다. 발상이 신선한 점은 장점이지만, 개연성과 핍진성이 3% 부족합니다. 우수작 2는 해방과 자유를 노래한 시인이 사실은 지()우산으로 아내를 때린 사실을 자신의 시에 표현한 장본인이라는 점을 알았을 때 느끼는 분노와 존경, 답답함과 이해심, 절망과 희망을 표현한 글입니다.

작문 백일장에 응모해준 모든 준비생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2023년 새해 1월 제27회 백일장에서 또 만나면 좋겠습니다.

제26회 한터 온라인 백일장 <작문 부문> 최우수작
정인화
불빛 아래, 이태원

연락이 빗발친 하루였다. 은호는 아침에서야 간신히 바(bar)를 마감하고,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왜 연락을 안 받니, 혹시나 해서…… 뒤늦게 확인한 핸드폰에는 지인들의 연락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간밤에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에 경악한 이들이었다.

다행히 그의 가게는 참사 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다만 CPR 가능자였던 은호는 가게를 두고 거리에서 날밤을 새워야 했다. 몇 시간째 가슴을 압박하고, 호흡을 불어넣는 반복 작업은 현실 감각을 아스라이 흩뜨려 놓았다. 유일하게 선명한 기억은 저를 향한 카메라 불빛들뿐이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전신을 핥는 셔터 빛이 생생했다. 그는 지난 경험을 통해 그 불빛의 위력을 이해하고 있었다. 빛이 쏟아지는 파놉티콘의 죄수처럼―카메라에 박제된 수많은 기록이 이태원 밤의 어둠을 걷어내고, 책임을 물을 검은 양을 찾아내려 들 것이었다. 수습이 끝난 아침, 이태원에 무슨 일로 왔냐 묻는 유튜버에게 ‘게이바 사장이다’ 일갈하고픈 욕구를 삼켜낸 것도 이런 막연한 걱정 때문이었다.

―은호야, …오랜만이다.

기절하듯 가게 소파에서 잠든 은호를 깨운 건 옛 애인, 현석의 목소리였다. 이 년여 만에 재회였다. 꿈이라면 질 나쁘고 현실이라면 가슴 아프네, 건넨 말에 현석은 적막히 웃었다. 현석의 창백한 낯과 왼손에 낀 결혼반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과거, 부모님 소개로 선을 봤고 곧 결혼하노라 제게 통보하면서 그가 내보인 반지였다. 원망은 아주 짧게만 스쳤더랬다. 은호는 일 년 만난 애인을 위해 평생을 헌납하라 요구할 만큼 뻔뻔치 못했고, 그래서 죄책감에 움츠러든 현석을 그저 달랬다. 그래. 이제 밤에 이태원 오지 말고, 밝은 데서 살아.

현석은 은호의 말에 따르지 않았다. 며칠 후 이태원 게이 클럽에서 술을 진탕 퍼부었다고 했다. 은호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한 SNS 영상 때문이었다. 현석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난 영상 아래, 증오에 찬 말이 가득했다.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졌다. 집단 감염 사태 이후 오래간, 은호의 가게는 폐업을 고려할 정도로 손님이 끊겼다. 이태원 일대 전체도 무거운 침묵에 잠겨 들었다. 현석의 파혼 소식이 한참 뒤에야 전해진 것도 그 탓이었다.

―그때 난 내심, 이태원이라 안심했었나 봐. 여기 밤은, 뭐랄까, 자유롭잖아. 어둠이 모든 경계를 뭉갠달까… 근데 그날 날이 밝으니까 세상이 날 향해 거대한 손전등을 내리쬐고 있더라고.

모든 게 너무 밝고 선명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 현석이 뇌까렸다. 막 표본 침에 꽂힌 나비처럼 현석의 속눈썹이 가늘게 진동했다. 은호는 그의 차가운 손을 움켜쥐었다. 잠시간 벽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공간을 메웠다. 문득 확인한 시계는 11시 59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자와 생자가 섞이는 핼러윈의 마법이 휘발될 시간이었다.

―그래서.
―…
―이 년 전에 죽은 놈이, 여기 왜 온 건데.

한순간에 손에 잡힌 감촉이 사그라들었다. 돌아오는 목소리도 없었다. 그는 현석이 떠났음을 직감했지만, 시계에 고정된 눈을 떼지 않았다. 넓은 공간에 홀로 있음에도 온몸이 꽁꽁 묶인 듯했다. 날이 밝으면 현석을 비췄던 손전등이 어딜 비출지 몰랐다. 은호가 그 빛을 피해간다 해도 여파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또다시 기묘한 방식의 추모가 이어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Pray for Itaewon, 외치면서도 모두가 한동안 이 일대를 디디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굴겠지.

그렇기에 오늘은 혼자 남겨질 무수한 날의 시작이었다.